토요일, 8월 26, 2006

춤추는 아희?


새로 태어난 아기들은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처음에 아기들은 시력이 매우 약하며 오직 흑백만을 인식할 뿐이라고 알려졌다. 그래서 한가지 색 모빌이 칼라 모빌보다 더 잘 인식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희는 처음에는 이에 관심이 있는 듯 했지만 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첫 나들이

마침내 우리는 아희 평생 첫 나들이를 나갔다. 그리 큰 일은 아니었지만 어쨋든 첫번째 일이었으므로 약간 긴장되는 일이기도 했다.

목적지는 동네 성당인 성 조지 성당. 이는 새 아이의 출산에 감사하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성당에 있는 모두가 매우 따뜻하게 맞이하여주었다. 그들은 현주가 독실한 가톨릭 신장인 어머니를 위해서 아희를 낳기 전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바람에 모두들 우리를 알고 있었고 아희를 보고싶어 했었다.

미사 중 아희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미사 후 몇몇 신자들은 아희를 축복해 주었다. 결국 우리의 첫 나들이는 별 문제없이 마칠수 있었고 아희는 편안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시운전

전통적으로 새로 태어난 아기와 아이의 엄마는 21일째 되는 날 전까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희가 태어난지 21일째 되는 날인 8월 25일을 처음 밖으로 나가는 날로 정했다.

첫 바깥 나들이의 목적지는 걸어서 30분 가량 걸리는 동네 성당으로 첫 나들이 치고는 꽤 먼 곳이었다. 그래서 그 전날 집주위로 살짝 나가보는 시험 나들이를 했다. 이는 새 유모차에 대한 시운전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어머니의 상징

아이를 돌보기위한 전통적인 도구인 포데기는 여러 용도를 가지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아이를 달랠 때 뿐 아니라 집안일을 하는 동안 아이를 업고 있는 데에도 유용하다.

이는 전형적인 엄마의 상징이다. 그래서 어느 여성이 이를 착용하든 그 여성은 어머니로 보인다. 그러나 남자가 이를 입으면 그저 우끼게 보일 뿐이다.

조산사, 사라

아희를 갖는 것은 또한 사회정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상 보건의료 시스템인 국가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경험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에 있어는 조산사(midwife)가 의료전문가로서 그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조산사는 임신때 부터 아이의 발달과 산모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챙기는 것에서 부터 산후 집까지 방문하여 모유 수유와 같이 육아에 대한 조언해주고 보살펴 주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사라는 우리를 담당한 조산사였으며 매우 친절하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었다. 사라는 현주와 아희에게 아무 문제가 없음에 따라 비교적 일찍 담당에서 떠나 건강방문자(Health visitor)에게 역할을 넘겼다. 그래서 우리는 아희가 자란 후 누가 아희와 엄마를 아희의 탄생을 위해 보살펴 주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첫 시승

아희가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반면 아직 혼자 놀지는 못함에 따라 우리는 이를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유모차 타기는 그 해법 중에 하나였다.

이 유모차는 지금껏 아희를 위해 산 것 중에 가장 비싼 품목이다. 현주는 유모차 만큼은 정말 좋은 것을 원했는데 남자에게 자가용이 의미 하는 바가 특별한 것 처럼 유모차는 아희에게 일종의 자가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국의 여름 빅세일과 과 친구들의 지원 덕에 꽤 좋은 유모차를 살 수 있었다.

보는 바와 같이 현주 복장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아희가 처음 유모차를 타는 순간을 담아놓지 않을 수 없었다. 아희는 자신의 유모차에서 편안해 보였다.

일요일, 8월 20, 2006

아희 전용 욕조

아기를 위하여 특별히 디자인된 아희 전용 욕조를 사용하기 까지는 2주가 걸렸다. 하지만 아직 아희가 쓰기에는 아희가 너무 작다는 것만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아희에게 첫번째로 욕조에 몸을 담근 제대로 된 목욕이었기에 시도할 가치는 있었다. 아희에게도 더 편안해 보였다. 예전보다 훨씬 덜 칭얼대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아희가 목욕시간을 즐기기 시작한 듯 하다.

모유 먹이기

모든 모유를 먹이는 엄마들은 존경받아야 하며 모유수유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면 아무도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엄마들을 탓하지 못할 것이다. 엄마도, 아이도 모유수유를 위해 처음 배워가는 과정을 거치기에 둘에게 모유수유는 커다란 도전이며 익숙해 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모유를 원할 때마다 깨야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둘다 모유수유에 익숙해질때 까지 한두시간 동안 - 때로는 세, 네시간까지 - 아이를 안고 모유를 먹어야 한다. 엄마는 문득 자신이 자고 있는지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낮과 밤


어느덧 아희가 태어난지 2주가 지난 지금 길지는 않지만 아희가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희에게 낮과 밤의 차이는 별로 없다. 이는 우리가 저녁에 잠을 제대로 자는데 어려움이 한층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희는 아직 장남감을 가지고 놀지는 못한다. 그래서 잠자지 않을때 하는 일이란 아빠나 엄마를 쳐다보거나 주의를 둘어보는 것이 전부이다. 안고 있을때는 잠들고 있다가도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눈을 뜬다. 아직 아희가 보거나 듣는 것이 완전하지 못해도 최소한 부모 품에 안겨 있는가 없는가는 바로 아는 것이다.

토요일, 8월 19, 2006

엄마 되기

나는 여성이 모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여성이 눈물과 고통을 아이와 나누는 과정에서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아이를 크나 큰 진통 끝에 낳는다고 해도 여성이 자동적으로 엄마라고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 처럼 아이를 먹이고 돌보는데 기본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낀 후, 그리고 아이로 인해 생기는 변화를 자신만큼 직면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또 그것을 피할 수 없음을 인지한 후, 여성은 엄마가 되어간다.

부분적으로 이는 아빠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처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되어 있는 만큼 엄마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희는 지난 일요일에 처음으로 잠투정을 심하게 했다. 네시간 동안 계속해서 모유를 달하며 울며 잠들질 않았다. 이는 Dom네 가족이 아이를 보러와 잠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그 날이였다. Dom은 모든 아이들은 잠투정이 있다면서 아희가 잠투정을 안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한 뒤였다. 엄마는 지쳤다. 그 다음날 그 오랜 시간동안의 잠투정과 씨름을 한 아이와 엄마는 결국 이렇게 다정하게 잠들어 있었다.

기록을 위한 사진


매일 아희의 목욕이 끝나면 사진을 찍었다. 이는 아희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한 하나의 의례가 되었다. 보통 아이의 얼굴은 12번도 더 바뀐다고 하지 않나. 아희가 결국 어떻게 보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또한 이 매일 찍는 사진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변화는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아직 뚜렷한 변화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얼굴이 더욱 선명해지고 볼에 젓살이 붙는 것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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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희를 공개합니다


만 여섯째 날은 우리나라 식으로 아희는 태어난지 7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는 또한 금줄을 걷는 날로 방문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을 기념해서 또 아희가 태어난 후 꽤 힘들었던 첫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을 기념해서 함께 고생한 모두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모두 이것이 시작에 불과함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아가를 온전한 사랑으로 바라보다

아희가 태어난 지 다섯째날, 나는 가게문이 열리자마자 시내에 나가 헌 젓꼭지의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물건은 닥치는 데로 사왔다. 유두 보호대, 전동 유축기, 가슴모양을 딴 젓병 등등...

그것들은 꽤 유용했다. 현주에게는 일종의 구세주였던 셈이다. 그제서야 어젯밤에는 다시 아이를 뱃속에 집어넣고 싶었다고 실토했다. 심각한 상황을 일단 벗어남에 따라 현주는 아기를 온전한 사랑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아희, 우유를 마시다


네째날은 온종일 헌 젓꼭지 문제로 지센 날이다. 엄마와 아이가 아직 모유수유에 아직 적응하지 못해 젓꼭지는 심각하게 헐었고 갈수록 심각해져 갔다. 그날 저녁에서는 심한 통증에 눈물없이 젓을 먹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다른 대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다른 방법으로 아희를 먹이기로 하였다. 젓병으로 먹이는 것은 유두 혼동을 일으킬 수 없으므로 할 수 없어 병원에서 한번 시도했던 데로 컵으로 분유를 먹여보기로 했다. 하지만 수유용 전용컵이 없었으므로 할 수 없이 미래에 아희 음주습관에 영향이 없기를 바라면서 소주잔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첫 목욕

태어난 지 세째날. 아희는 난생 처음 목욕을 했다. 전날 집에 돌아와 모두들 너무 피곤했고 아희에게도 하루 동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첫 목욕이 좀 늦었다.

비록 배꼽이 아직 떨어지지 않아 조심 했기에 완전히 물에 들어가지 않는 부분 목욕이었지만 아희는 훨씬 상쾌해 보였다.

세째날은 또한 온종일을 젓몸살 걱정으로 지세운 날이기도 했다. 현주에게 젓멍울이 만져지고 약간의 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선 그날 아침에 바로 지역사회 조산사의 조언데로 가슴에 붙일 convoy cabbage를 사러 갔다. 다행히 그로인해 좀 나아졌지만 또 다른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집으로...

결국 우리는 아희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우리 모두에게 이는 뭉클한 순간이었고 진통과 함께 집을 나섰다가 새로운 생명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현주에게는 특별히 더 했다. 사진속에서 그녀의 눈물을 볼 수 있으리라...

환영을 위한 준비

현주와 아희가 병원에 하루 더 머무는 동안 집안은 이 둘을 환영하기 위해 꾸며졌다. 나는 이 둘을 병원에서 온종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집을 꾸미는 일은 장모님과 종윤이라는 친구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나는 그저 이 사진 촬영을 위한 모델이었을 뿐이다. 환영의 글씨들은 대학시절 서예 동아리 회장도 했었던 종윤이가 썼다.

둘째날, 아희가 웃다

출산후 다음날 우리는 아희를 집에 데려갈 것을 기대했지만 병원에서는 아희가 아직 충분히 젓을 빨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권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주에게 아희를 밤새 혼자 돌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산후조리가 매우 중요시되는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겠지만 출산 하자마자 산모를 목욕시키는 이 곳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 다음날 아희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젓을 빪에 따라 병원에서는 오늘 집에 가도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얼마나 기다렸던 말이었던가.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아희는 다시 정오때까지 잠만 자며 젓을 빨지 않았고 그러자 다시 병원에서는 집에 가기에 좋은 상태가 아닌 듯 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 때 상황은 비상사태가 되었다. 나와 현주는 계속해서 아희를 깨워서 젓을 물렸다. 3분 빨리고, 5분 빨리고, 결국 10분 빨린 끝에 병원에서 한번만 더 이렇게 먹으면 집에 가도 좋겠다고 했다. 우리가 웃었듯 아희도 웃었다.

첫 아침

아희는 엄마와 보낸 첫날밤 엄마를 당혹케 했다. 현주는 다른 가족이 밤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아희를 돌봐야 했다. 아희는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아침 7시까지 자질 않았다. 하지만 아희는 자기 인생의 첫번째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아희... 아이의 이름

아이의 이름은 '아희'라 지었다. 아이가 여자아이인 것을 안 후 어느날 아침, 이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아희는 '아름다운 희망'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한자로는 싹틀 아(牙)에 기쁠 희(喜)를 써서 '싹트는 기쁨'을 뜻한다.

이 사진은 태어난 바로 그날 찍은 것이다. 아희는 태어나자 마자 이렇게 두 눈을 뻔쩍 떴다.

첫번째 포옹

자궁에서 세상 밖까지, 12시간이 걸린 그것은 기나긴 여행이었다. 아마 이 자그마한 아이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으리라. 엄마의 가슴은 이 긴 여행 끝의 가장 좋은 안식처였을 것이다.

탄생

2006년 8월 5일, 오후 5시 41분, 눈물과 고통으로 마무리 된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는 우리의 책임 아래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 잊을 수 없는 신비로운 순간은 장모님이 찍어놓으셨다.

오랜 기다림의 마지막

진통은 새벽 5시정도 부터 시작되었다.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기 시작하면서 진통이 훨씬 더 심해져서 진통 올 때 말조차 하기 힘들 정도일 때 현주는 한국에 아이를 가진 친구에게 전화걸어 진통이 어디까지 심해지는 지를 물어봤다. 그 친구 왈 "한 지금 진통이 5 정도라면 막판에는 100정도라고 할 수있지. 그것은 사실이었다.

오후 1시쯤 더이상 집에서는 진통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병원에서 4시간 가량 쉼없이 진통이 계속되었고 진행은 급격하게 빨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현주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뿐이었다.

별똥이가 자라고 있어요

아이를 가지기로 한 첫날밤... 침실 창문을 통해서는 맑은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은 3주가 지나서 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태명을 '별똥이'라 불렀다.

아이의 출산일이 조금 늦은 것을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중 산모도 아이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 (결국 출산일은 예정일보다 11일이 늦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날 볼튼 수도원이 있는 요크셔 데일즈 국립공원으로 떠났던 하루 여행은 출산 전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